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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실리콘 벨리의 스타트업 OSVehicle은 전 세계 최초로 모듈형 자율주행차의 컨셉을 적용한 EDIT이라는 모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미 저희 에티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것처럼 자율주행 기술은 구글, 테슬라와 같은 신생업체들과 벤츠, 아우디와 같은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 모두 현재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테스트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OSVehicle은 작은 회사들도 보다 쉽게 자동차 관련 사업에 진출하여 세상에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모듈형 자율주행차의 개념을 공개한 것입니다. 통상 자동차 하나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에는 수많은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모듈형이라면 다른 회사들이 개발한 모듈을 보다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회사들의 자동차 산업 진출 문턱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DIT의 주요 모듈 변경성,  출처: OSVehicle 공식 홈페이지


OSVehicle도 대표적으로 다음 5가지 문제점들로 인해 작은 회사들이 자동차 부문에서 활약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자동차가 개발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

2. 최소 수십억 원 이상의 투자 비용이 드는 점

3. 수요처 별 커스터마이징에 대해 대응이 어려운 점

4. 배송과 관련된 서비스들은 전통적인 자동차를 사용해야 하므로, 특정 서비스에 최적화하여 개조하기 힘든 점

5. 다른 회사들이 개발한 최신 기술들을 가져다 쓰기 어렵다는 점

결국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듈형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OSVehicle은 자신들의 모듈형 모델 EDIT이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모두가 사용 가능한 자율주행차

모듈 개념을 이용하면 자율 주행기술 0단계부터 5단계까지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배 이상의 사용 기간

모듈은 쉽게 교체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상업용 차량들이 2년 정도의 수명을 갖는 것에 비해 EDIT은 20년 이상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White-label

벤츠, 토요타, 현대와 같은 브랜드 이름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신의 회사 이름이나 로고를 차량에 새길 수 있습니다. 음식 배달과 공유형 자동차 서비스가 늘어남에 따라, 자동차는 제조사가 아니라 서비스 브랜드 그 자체에 보다 초점이 맞춰지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외관과 내관

5개의 메인 파트와 4개의 틀(앞, 뒤, 지붕, 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대로 변경할 수 있고, 수리와 업그레이드가 용이할 것입니다. 또한 자율 주행 기술의 레벨에 따라 실내 공간도 전통적인 모습부터 핸들이 필요 없는 카페형까지 커스토마이징이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EDIT의 상황 별 내장 모듈의 변경 모습, 출처: OSVehicle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소개를 듣고 나면 모듈형 자동차가 곧 시장에 나와 나만의 자동차를 설계하여 개성 넘치고 효율적인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혹시 '모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으신가요? 대표명사가 하나 있는데 바로 구글의 아라폰입니다.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라폰 프로젝트

구글의 아라폰, 출처: 구글


2016 9, 구글은 공식적으로 아라폰 프로젝트의 종식을 선언하였는데요, 아라폰은 조립 PC처럼 카메라, 스피커 등 스마트폰에 필요한 부품들을 모듈화해서 마치 레고블럭처럼 조립할 수 있게 만든 스마트폰입니다


말만 들었을 때에는 자기 자신만의 개성과 효율성을 가질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라폰은 안드로이드OS의 지원을 위해서 CPU, RAM, 디스플레이와 같은 핵심부품의 교체가 불가능했고, S/W 업데이트 시 호환성 문제, 낙하 실험에서의 문제점 등이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모듈 사이로 방진, 방수, 방습 등이 제대로 안 되는 것 또한 문제였습니다.


이런 참신한 생각을 구글만 한 것은 아닙니다. LG 2016 2월에 G5를 출시하면서, 업계 최초로 모듈형 스마트폰을 양산하였습니다. 물론 구글 아라폰과 다르게 제한적인 모듈형 설계였지만, 그 혁신성을 인정받고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에서 32개의 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후 유격 등의 마감 부족 문제, 불편한 모듈 교체 방식과 달랑 2개에 그친 모듈이 문제점으로 대두되었습니다. 또한 모듈이라는 특징을 제외하고서도 다른 경쟁 제품들과 비교시 기본기 측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했던 제품이었습니다.


LG G5의 모듈 분리 모습, 출처: LG전자 홈페이지


모듈형 스마트폰들이 이렇게 시장에서 외면 받거나, 개발이 중단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적화가 쉽지 않은 모듈형 제품들

관련 전문가들은 최적화의 어려움을 주 이유로 들고는 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친숙한 녀석이지만, 인류의 전자제품 제조기술이 집대성 되어있는 최첨단 IT 기기입니다. 카메라, mp3, 게임기 등 모두가 따로 들고 다녔던 기기들을 하나의 스마트폰에 넣게 되면서 스마트폰은 미세한 제조기술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설계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제거가 되어 현재의 스마트폰이 만들어지는데, 모듈형 제품은 이러한 점에서 모듈끼리의 연결에 필요한 접점이나 프레임 등으로 인해 공간을 최적화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모듈별로 소프트웨어 호환, 업데이트 호환 등의 문제도 있습니다. 즉 부분 최적화는 되지만 전체 최적화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준최적화와 전체최적화


 

이렇게 조립형 핸드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주변에 모듈형 설계를 통해 성공한 사례는 아마도 조립 PC와 레고가 유일해 보입니다. 그만큼 모듈형 설계란 여러 가지 제약사항을 극복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 모듈형 자동차의 미래, 망작인 것인가?

모듈형 자동차라는 아이디어를 들으면 매우 신선하고 뛰어난 아이디어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듈형 자동차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만은 않습니다. 자동차를 구매하고 운용할 때 소비자가 주로 고려하는 포인트는 보통 다음과 같이 6가지로 구분됩니다.


안전성, 가격, 성능, 디자인, 유지 보수, 편의성입니다.


모듈형 자동차는 편의성 측면 말고는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이 만드는 자동차에 비해 장점은 없다고 판단됩니다. 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5~7개 정도의 자동차 회사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을까요? 


1. 안전성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도, 디자인도 아닌 가격과 안전입니다. 차를 타는데 안전성이 확보 되지 못한다면, 그 차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안전 테스트를 엄격하게 진행하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제조사들은 더 가볍고, 더 강한 구조를 갖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개별적으로 R&D를 진행한다면, 이 또한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라 가격 상승을 가져오게 됩니다. 자동차 모델 하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수십번의 충돌 테스트를 거치면서 설계의 최적화를 거치는데, 모듈형 자동차는 그러한 과정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신형 BMW 5 Series의 IIHS Small Overlap test 장면, 출처: IIHS 공식 홈페이지


모듈형 자동차는 과연 안전한 차체 설계를 보장할 수 있을까요?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주요 부분을 바꿀 수 없는 디자인이 된다면, 모듈형의 장점을 점점 잃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듈형의 장점을 살리면 안전성을 지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 가격

가격 측면에서 보아도, 모듈형 자동차가 갖는 한계점이 보입니다. 자동차는 현대인이 구매하는 물건들 중 집 다음으로 비싼 물건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가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아예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성능이 좋은 프리미엄 라인, 그 외는 어느 정도의 안전성과 성능이 보장되어 있는 볼륨 브랜드 제품이 주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 토요타, 폭스바겐 등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모듈형 제품이 나타났을 때 이들 보다 가격이 더 싸질 수 있을까요? 이런 볼륨 브랜드의 자동차 회사들은 한 해 1000만 대에 가까운 자동차를 생산합니다. 그렇기에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과 R&D 비용 등을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모듈형 자동차가 현재의 완성형 자동차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만들어진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무시한 말입니다. 전기차라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전기차의 대명사, 테슬라 조차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파나소닉과 협력하여 기가팩토리를 지었습니다. 

 

3. 성능

그렇다고 모듈형 자동차의 기본기 성능인 달리고, 서고, 회전하는 능력에 집중한 자동차는 더욱 아닙니다.


4. 디자인

디자인 측면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우월한 점을 가지나, 모듈의 특성상 발생하기 쉬운 단차 문제나 디자인의 통일성 이슈를 생각한다면, 우수하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5. 유지 보수

'국내에서 욕을 많이 먹는 현대차가 여전히 국내에서 1등을 하는 이유는 A/S 때문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A/S망이 잘 갖추어져있고, 부품의 수급도 쉽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A/S를 받을 수 있습니다. 팔리는 양이 많아서이지요. 그런데 모듈형 자동차의 경우 자신이 사용하는 모듈을 만든 회사가 망하여 더 이상 같은 부품이 없을 수도 있고, 각 모듈을 수리할 수 있는 정비소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미국처럼 차고에서 자신의 차를 조립하고, 수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6. 편의성

자신이 사용하는 목적에 맞게 자동차를 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편의성은 일반 자동차 대비 높다고 보여집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모듈형 자동차의 경우 모듈이라는 특징을 빼고도 다른 자동차와 견주었을 때 손색이 없어야 성공할 텐데 안전성, 가격, 성능, 디자인, 유지 보수, 편의성이라는 6가지 측면에서 기존 대비 우수한 점은 편의성 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 편의성을 위해 나머지 5개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모듈형 자동차 생태계의 부흥은 당연히 어려워 보입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신기한 아이디어, 번뜩이는 아이디어, 아름다운 아이디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feasibility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 장미빛 미래를 그리는 것은 아닌지 경계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희 에티의 생각과 다르게 모듈형 자동차가 정말로 성공하려면, 최소한 저런 이슈들의 해결 방법 또한 높은 중요도로 놓고 전략을 세우고, 개발해야 할 것이라 봅니다.


참고기사

Techcrunch, “OSVehicle comes out of stealth with a modular self-driving car called 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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