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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부분의 자동차에 아직 전동식 창문 개폐 버튼도 없던 시절, 이스라엘의 한 컴퓨터 비전 연구자는 자동차에 카메라를 달아 다른 자동차를 인식하는 기술을 개발해 회사를 차렸습니다.


(사진=Wikepedia)


이 회사는 18년 후인 올해, 인텔에 1600억 달러(한화 약 160조 원)의 가격에 인수되어 거대 인수합병 건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모빌아이(Mobileye)라고 하는 이 회사는,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시점인 2012년부터 자율주행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다가오지 않은 완전자율주행의 시대를 모빌아이는 수십년 전부터 준비한 것입니다.


모빌아이의 차량 인지 알고리즘


오늘 소개해드릴 기업은 굉장히 먼 미래의 시대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빌아이와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사실 하고자 하는 일 또한 모빌아이와 비슷한 점이 많아 모빌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화두를 던지게 되었는데요, 바로 Brain Corporation이라고 하는 스타트업입니다.



Brain Corp는 얼마 전 인공지능 분야를 위해 조성된 소프트뱅크의 Vision Fund라는 투자 펀드를 통해 1억 1400만 달러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손정의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연례 회의인 소프트뱅크 월드에서 직접 소개할 정도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소프트뱅크 월드 2017에서 BrainCorp를 소개하는 손정의 회장


Brain Corp는 과연 어떤 기업일까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스타트업이 하려는 것은 ‘뇌’를 만드려는 것인데요, 사람의 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로봇의 뇌를 만드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많은 분들이 ‘아, 이번에도 또 뻔한 딥러닝 쓰는 컴퓨터 비전 스타트업이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Brain Corp 가 진짜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의 CEO이자 창업자인 Eugene Izhikevich가 실제 사람의 뇌를 연구하던 저명한 신경과학자라는 것입니다.


Izhikevich는 『신경과학의 동적 시스템(Dynamical Systems in Neuroscience)』, 『Weakly Connected Neural Networks』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저술한 굉장히 영향력 있는 신경과학의 구루 중 한명입니다. ‘인공’ 신경망이 아닌 실제 신경망을 오랜 세월 연구했고, 그 동안 얻은 인사이트와 기술에 착안해 로봇의 뇌를 만들겠다는 게 Eugene Izhikevich가 2009년 Brain Corp를 시작한 목표였습니다.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Brain Corp의 창업자 Eugene Izhikevich


Brain Corp는 현재 무엇을 제안하는가?


궁극적으로 ‘로봇의 뇌’를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Brain Corp는 창업한지 8년이 된 현재 꽤 많은 진전을 이루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의 홈페이지에서는 두 개의 상품을 소개합니다. 첫째로, BrainOS라고 하는 로봇이 서비스를 수행할 때 해야 하는 인식, 판단, 동작 등의 모든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운영체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BrainOS는 Brain Corp의 클라우드 환경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 만일의 경우 컨트롤 타워에서 사람이 직접 BrainOS를 탑재한 로봇을 원격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Brain Corp의 주력 서비스인 청소 차량 자동 주행 모듈 EMMA


현재 더 주력하고 있는 Brain Corp의 상품은 EMMA라고 하는 바닥 청소를 위한 자동 주행 시스템입니다. Brain Copr는 이 상품을 청소 차량를 만드는 회사들에게 기존 모델에 추가할 수 있는 모듈 형태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래 사람이 타거나 운전해서 조종하는 차량에 EMMA의 모듈을 붙이면 자동 주행 모드로 운전할 수 있게 됩니다. 이 EMMA라는 어플리케이션은 당연하게도 운영체제인 BrainOS 위에서 작동합니다. Brain Corp는 청소 차량 브랜드 ICE, NSS, Minuteman 등에 벌써 EMMA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Brain Corp의 서비스 소개 영상


신경과학에 착안한 Brain Corp의 기술적 접근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서비스를 하는 Brain Corp의 운영체제 BrainOS의 핵심 기술에는 앞서 설명했듯이 신경과학의 여러 이론에서 착안한 새로운 인공지능 프레임워크가 있습니다. Brain Corp는 두 개의 화이트페이퍼에서 회사의 기술의 구체적인 설명까지 제공해줍니다. 


첫번째 보고서 Predictive Vision Model에서는 기존 딥러닝 아키텍쳐의 한계를 지적하며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고신뢰도로 물체 인식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Predictive' 아키텍쳐를 제안합니다. 기존 딥러닝 아키텍쳐 대부분이 랜덤한 이미지를 받아서 이미지 속 특성들을 학습한다면, Predictive Vision Model은 연속적인 장면 속의 환경 자체에 대해서 학습을 해 특정 물체가 다음 이미지에서 어떻게 보일지 추측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물체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조도, 빛의 방향, 물체가 보이는 각도 등에 틀어짐에 따라 기존의 딥러닝 알고리즘은 많은 한계를 드러내는데 Brain Corp의 알고리즘은 이에 대해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물, 현재 주류의 딥러닝 알고리즘은 이런 범용성을 잘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보고서 Biological Predictive Model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실제 뇌의 어떤 특성을 새로운 인공지능 아키텍쳐 설계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번째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다룬 뇌의 'predictive' 특성을 비롯해 시간에 대해 항상 연속적인 장면만 학습한다는 특성, 그리고 맥락을 기반으로 판단을 한다는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 뇌의 구조에서 착안한 Brain Corp의 새로운 인공신경망 아키텍쳐


이렇게 Braion Corp의 접근은 현재 주류의 딥러닝 아키텍쳐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을 많이 취하고 있어서 딥러닝 아키텍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이 두 보고서를 읽어보는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 서비스 로봇의 정체 지점은?

현재 많은 로봇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여론의 이목을 이끌고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대단한 성과’를 보인 스타트업은 많지가 않습니다. 특히 아직까지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으로까지 로봇을 개발해낸 기업은 특히 많지가 않습니다. (지난 다수의 로봇 스타트업을 다룬 에티 글들 참고) 로봇의 상용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로봇의 상용화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병목이 무엇일까요?


(사진 = OpenPose)


공교롭게도 두 가지 모두 바로 로봇의 눈과 뇌를 담당하는 컴퓨터 비전 소프트웨어와 프로세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딥러닝 기술의 발달로 인해 컴퓨터 비전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겨우 이미지를 보고 꽤 명확한 객관적 정보에 대한 판단만 하는 정도입니다. 특히 동영상을 분석해야 하거나, 실시간으로 영상을 처리해야 하는 분야에 들어가면 컴퓨터 비전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상용화를 해 범용적인 환경에서 사용돼야 하는 로봇의 경우, 컴퓨터 비전의 범용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로봇의 비전 엔진은 ‘실시간’, ‘영상’, 그리고 ‘범용성’이라는 세 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하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너무나도 어려운 기술적 과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다시 모빌아이와 비교해볼까요? 모빌아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1999년은 딥러닝 이전의 고전적 컴퓨터 비전의 분야가 한참 활성화되고, 자동차에 능동적 안전 증대 시스템의 필요성이 막 대두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에어백처럼 사고가 났을 시 작동해 탑승자를 보호하는 걸 수동적 안전 증대, 사고가 일어나기 사전에 사고를 예방해주는 시스템을 능동적 안전 증대라고 합니다.) 당시 능동적 안전 증대 솔루션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는 누구나 예상했지만, 자동차의 대부분은 요즘은 너무나도 당연한 전장 시스템도 잘 안 갖춰져 있었던 때였고 당연히 그런 솔루션 시장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Bosch, Continental 등 몇몇 자동차 기업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런 솔루션을 구현하려고 노력했고 모빌아이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솔루션을 구현하는 데에 성공한 회사들은 시장의 성장세를 타며 결국 잘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 ‘컴퓨터 비전’을 구현 방식으로 선택했던 Mobileye는 운이 좋게도 딥러닝이라는 잭팟이 터지면서 함께 대박을 맞습니다.


Mobileye의 주력 상품이자 핵심 솔루션인 EyeQ 시리즈


모빌아이는 창업 초기부터 이 솔루션에 대한 구체적인 니즈에 접근했고, 따라서 수요가 많지 않았던 창업 초기에도 사업을 여러 영역에 분산하지 않고 오로지 B2B를 통한 솔루션 제공에만 집중했습니다. 결국, 훗날에 소비자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안전 증대 성능(Adaptive Cruise Control, Automatic Emergency Brake 등)을 보장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솔루션 기업이 되어 대중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600만대 이상의 자동차에 솔루션을 납품하는 거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동차 안전 증대 솔루션 시장에서 자동차 제조사와 솔루션 기업이 서로 분리되었던 것처럼, 로봇 시장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진 출처)


서비스 로봇의 현 상황도 1999년 모빌아이 태동기의 시장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점점 커져가고 있는 시장에서, 특별히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솔루션(로봇의 눈과 뇌)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비스 로봇을 하는 많은 기업 중에서 이 한가지 컴포넌트에 집중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가 않습니다. Brain Corp의 CEO Eugene Izhikevich가 소프트뱅크 월드에서 기업을 소개한 영상을 보면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고 솔루션에 집중하는 것을 회사의 필승 전략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ugene Izhikevich의 소프트뱅크 월드 연설 영상


장거리 달리기를 해야 하는 Brain Corp

기업은 연구 기관들과는 달리 수익을 창출해야만 한다는 숙명이 있습니다. Brain Corp의 기술력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모빌아이처럼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특히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서 큰 수익창출 없이 수년, 어쩌면 십수년의 시간을 버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의 튼튼한 자본력과 창업자 Izhikevich의 막대한 명성과 권위 등을 계속 보전해나간다면, Brain Corp는 어쩌면 20년 후에 새롭게 생길 거대 시장인 로봇 솔루션 시장에서 메이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기사

TechCrunch, "Self-driving robot AI company Brain Corp raises $11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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