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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비자들이 중국산 하면 짝퉁을 많이 떠올리듯이, 실제로 중국 내부에서도 신뢰 문제가 만연합니다. 2004년의 가짜 분유 파동, 2008년의 멜라닌 파동은 중국인들에게 마저 자국의 식품 산업에 대해 불신을 일으켰는데요. 현재도 알리바바의 B2C 쇼핑몰에는 가짜 제품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개개인의 도덕성이 결부된 문제라 쉽게 해결할 수도 없는 부분인데요, 중국의 민간 기업들이 이를 해결하고자 나섰습니다.

 

(이미지 출처 : Inverse)


일단 중국의 사회 신용 체계(Social Credit System)가 실제로는 두 개의 개별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사회 신용 체계는 재무적 측면의 (Financial) 신용과 사회적 측면의(Social) 신용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적 신용을 뜻하며, 후자는 개인의 행동(ex: 준법정신)에 대한 신용을 뜻합니다.  

 

현재 재무적 측면의 사회 신용 체계는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민간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중국은 인민은행(PBOC) 주도하에 신용 정보 센터를 설립하였고 차용인의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신용등급을 개발할 계획이었지만 2015년까지 전체 인구 25%의 신용도만 평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구도 너무 많았고 주로 현금을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2015년에 중국정부는 시범적으로 8개의 개별 기업들에게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였고 논란의 알리바바 "세서미 크레딧(Sesame Credit)"도 이때 출범하게 됩니다.  


반면 사회적 측면의 신용 체계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데 전국 규모가 아닌 소수의 지방에서 파일럿 형식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측면의 신용 체계의 핵심에는 공동 처벌제도가 있는데, 각 지방정부와 부서들이 협력하여 세금과 관세를 위반한 사람이나 기업을 강력한 입법을 통해 처벌하고자 합니다. 2017년 12월에는 총 34개 부처가 공동으로 고액 체납자에 대한 형벌에 합의하는 내용의 징벌 각서(MOU)를 작성한 바 있습니다.


만약 개인이 지속적으로 납세와 같은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 거주하는 A씨가 법원의 벌금 명령을 무시하면 지방 정부 산하의 통신사가 체납자의 통화 발신음을 "당신이 전화를 건 사람은 벌금을 내고 있지 않습니다, 시민의 의무를 다하게 설득해주세요"라는 멘트로 바꿔 버립니다. 또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기차여행, 비행기 탑승 등 교통수단에서부터 제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대학 합격까지 취소될 수 있습니다.


세서미  크레딧 (이미지 출처: Newswire)


현재 서양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중국의 사회 신용 시스템 이야기의 대부분은 "세서미 크레딧"에 관한 내용입니다.  2015년에 알리바바 산하의 금융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은 신용 등급시스템 "세서미 크레딧"을 출범했습니다. 


"세서미 크레딧"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비정형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알리바바의 구매 내역부터 지하철 요금까지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평가해 점수를 매깁니다.  "세서미 크레딧" 점수는 350점부터 950점까지 그 폭이 넓으며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650~750 사이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세서미 크레딧"이 논란이 되는 것은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는 요소들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평가 알고리즘은 기밀이라 알 수 없지만 2015년에 알리바바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인관계"가 신용평가의 척도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온라인 상에서 반정부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 관계에 있으면 자신의 크레딧 점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천안문 사태에 관한 글을 올리면 점수가 하락할 수 있고, 중국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글을 포스팅을 하면 점수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친정부상태로 유도합니다. 사회적 말살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정부를 지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What’s on weibo)


하지만 "세서미 크레딧"은 패널티를 주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특정 개인이 낮은 점수에 분포해 있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지난해 5월 중국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항공기, 열차 탑승을 금지시켰는데,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외신들이 블랙리스트를 "세서미 크레딧"과 연관 시켰습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사람들은 신용불량자이거나 고액 및 상습 체납자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오류는 중국 사회 신용 체계에 두 개의 개별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다만 알리바바는 크레딧 점수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신용 점수가 높으면 대출을 받기도 용이하며 이외에도 렌터카 및 호텔 숙박 등에서 우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 "세서미 크레딧"은 성공한 프로젝트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알리바바가 성장함에 따라 현금에 익숙했던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불러내었으며 개개인들이 친정부 성향을 가지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서미 크레딧"을 비롯한 8개의 개별 기업들의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들이 꾸준히 제기되어왔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이슈가 여러 번 불거진 적 있으며, 수천 개의 항목들을 하나의 포인트 점수로 묶어내야 하는데 개인의 행동들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효한 신용평가보다는 자사의 이익을 우선시 했습니다.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많이 사면 "세서미 크레딧" 점수가 올라갔는데 이는 개인의 신용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지금까지 8개의 회사 그 누구도 신용 등급 시스템에 대한 공식 라이센스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2018년에 중국 정부와 8개의 기업들이 합친 조인트벤처가 탄생했습니다. 이 조인트벤처는 "바이항 크레딧"으로 불리며, 중국에서 첫 번째로 통일된 신용 정보 기관이 되었습니다. 중국 인터넷 협회가 전체 지분의 36%를 보유하고 나머지 8개의 회사가 각각 8%씩 가진다고 합니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중국의 사회 신용 체계를 봤을 때, 중국인들은 디스토피아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사회 신용 체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의 반응 (이미지 출처 : merics.org)


작년에 Freie Universität Berlin의 교수 Genia Kostka는 2천2백 명의 중국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80%의 응답자들이 사회 신용 체계를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이 결과가 놀라운 것은 고소득, 고학력, 도심 거주 계층일수록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민감할 것 같았던 집단들로부터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부유할수록 사회 신용 체계가 주는 이점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세서미 크레딧" 점수가 높아서 그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이 집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편리함들이 그들에게 낙관적인 전망을 가져다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다수의 중국인들은 사회 신용 체계가 공정하며 시민들이 법을 잘 지키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정부가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중국인들의 정부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여주며 사회 신용 체계가 검열이 아닌 무너진 사회의 신뢰를 높일 수단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지 소로스는 중국의 사회 신용 체계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 혐오스러운 시스템이 완벽하게 실행되면 시진핑이 국민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조지 소로스의 말대로 중국은 디스토피아로 향하고 있는걸까요? 


참고자료

BloomBerg, Why Big Brother Doesn’t Bother Most Chinese

Chinatalk, China’s Sociaal Kredietsysteem is niet wat je den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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